아이 셋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허겁지겁 출근하려는 엄마에게 그제야 학교 준비물을 챙겨야 한다는 초등학생 딸. 우유팩과 빈 병을 가져가야 한다는 말에 편의점에서 급히 먹어치운 우유가 엄마의 재킷에 묻고, 결국 5분 늦게 지각한 회사에서 마주친 그녀의 상사는 “아직도 모유수유를 하나봐? 우리 마누라도 첫 아이 낳았을 때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라며 뻔뻔하게 성희롱을 하여 그녀를 분노하게 만든다.
이 상황은 워킹맘의 모습을 그린 최근 한 드라마의 장면이다. 어떤 부분에선 다소 과장된 면이 있지만, 이런 모욕과 치욕을 견디며 더럽고 치사해지느니 ‘확 때려 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을 상황이다. 하지만 워킹맘은 좀 더럽고 치사해도 ‘워킹’의 상황은 차라리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진정으로 ‘맘’이어야 할 상황, 맘의 역할이 필요한 상황에선 크게 흔들린다. 아이가 급작스럽게 열이 날 때나 예기치 못한 야근 상황 발생 시 아이들을 돌볼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회사 때려 치고 싶다”는 마음이 굴뚝같이 치솟는다고 한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국내 기업에 근무하는 기혼 여성 710명을 대상으로 지난 4월 조사한 ‘워킹맘의 직장생활’ 테마의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도 그런 마음을 잘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워킹맘들은 우선 ‘회사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적 있는가’란 질문에 전체 응답자의 86.6%가 “있다”는 답을 했는데, 그들에게 회사를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는 이처럼 ‘자녀가 아플 때’이다. 이른바 ‘슈퍼우먼’이라는 평가를 받는 워킹맘도 자녀가 아프면 ‘장사’가 아니란 현실이 고스란히 반영된 설문조사였다.
우리나라 워킹맘들은 ‘회사를 다니는 데에 대해 자녀에게 미안하고 죄책감이 든다’라고 고백한 비중에 ‘자랑스럽다’ 느끼는 비중은 압도했다. 하지만 그런데도 워킹맘들이 계속 일하는 까닭은 ‘경제력을 높이기 위해서’를 가장 높은 비중으로 꼽았다. 이어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고 싶다’, ‘외벌이로는 생활하기 어렵다’, ‘남편이 일을 계속하길 원한다’는 내용 순이었다. 이들에게 ‘최소한 언제까지 직장생활이 가능할 것 같은가?’하고 예상 희망 정년을 물었더니, 평균 47세였다.
이미 47세를 넘긴 워킹맘, 아직 47세가 되려면 먼 워킹맘도 있을 것이다. 이들과 일은 대체로 애증관계일 것이다. 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을 사랑하면서도, 당장이라도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샘솟을 것이다. 남편과는 대화도 잘 안 하고, 친정과 시댁에는 그야말로 최소한의 도리만 하는 지경이고, 둘째 임신은 사표와 동의어라는 말까지 있는 마당에, 아이의 문제성 행동에 대해 외동이라서 더 그러는 거라며 하나 더 낳으라고 시댁에서는 종용하는 상황은 결혼생활, 직장생활, 육아의 3박자를 잘 맞추며 이끌어가는 일이 슈퍼우먼이라도 불가능할 것 같은 현실을 보여준다. 아이를 낳고도 어찌어찌 직장생활을 잘 하던 여성도 딱 그 시점에서 직장을 그만 두게 된다.
하지만 결국 나중엔 또 그렇게 그만둔 걸 대부분 후회하고 그렇지 않고 버틴 사람을 부러워한다. “나도 그냥 꾹 참고 견뎠어야 했어, 이제 와서 대학 졸업장, 대학원 졸업장 있으면 뭐하나. 아줌마에게 주어지는 파트타임 아르바이트나 비정규직 직원은 그런 것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자리 투성이인 걸.” 이건 어찌되었든 견디지 않고 집으로 돌아가면 머지않아 닥칠 또 하나의 현실이 된다.
회사 조직 안에서 간부나 임원이 된 여성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은 직장인 엄마에게 호의적이긴 커녕 불리한 현실 속에서는 어쨌든 견딜 수 있는 한 견디고, 버틸 수 있는 한 버텨서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직장인 엄마로 육아의 시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자부심 넘치는 직장여성으로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싶다면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
가장 가깝게 손쉽게 그리고 뼈저리게 동감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워킹맘 커뮤니티에 가입하는 것도 큰 힘이 된다. 검색해보면 정말 많은 카페, 그리고 SNS 모임들이 눈에 띈다. 요즘은 지역구별로 워킹맘 모임이 따로 있기도 하다. 전업주부들과는 다른 모습의 프로페셔널한 동병상련의 그들과 함께 커뮤니티에 들어서 서로 정보도 공유하고 고충도 함께 털어놔 보는 것 어떨까. 오프라인 모임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룹 채팅과 가끔 번개를 통해 요리부터 쇼핑몰, 직장생활의 고민 상담까지 많은 걸 함께 나누고 길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커뮤니티 활동의 가장 큰 수확은 나만 버티고 견디느라 힘든 건 아니구나 하는데서 오는 위로와 용기가 아닐까? 앞으로 나아갈 힘이 한층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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