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닿는 모든 것에 반응하는 게 햅틱입니다.”
지난 2011년 컴퓨텍스 기간에 대만 타이페이에서 만난 이머전의 데니스 시언 부사장과 나눈 대화가 떠올랐다. 우리가 ‘애니콜 햅틱’을 통해 귀에 익은 햅틱은 원래 이머전의 기술이다. ‘만지다’라는 뜻의 햅틱은 버튼 없이 밋밋한 터치스크린을 더 재미있고 현실적으로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손이 닿는 것에 따라 진동으로 반응하는 스마트폰 키보드도 햅틱 기술이 적용된 것이다.
이머전의 기술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인터페이스와 진동에 관련된 것이라면 모두 이머전의 기술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스마트폰 뿐 아니라 엑스박스, 플레이스테이션의 콘트롤러 진동 기술도 이머전이 원천 기술을 갖고 있다. 진동 인터페이스와 관련된 기술은 모두 이머전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라도 비슷한 기술을 따라 만들어 넣기 쉽지 않다. 플레이스테이션3의 듀얼쇼크 콘트롤러 출시에 발목을 잡은 것도 소니가 이머전의 특허를 침해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데니스 부사장은 ‘앵그리버드’를 비롯한 게임들에 진동이 적용되는 기술을 보여줬다. 줄을 당길 때부터 새가 날아가 벽에 부딪치는 느낌이 모터의 세밀한 진동으로 전해졌다. 당연히 “지금 바로 쓸 수 있는 건가?”라는 질문을 했고 그는 “곧 제품에 공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 기술이 어느새 우리 곁에 와 있었다. 갤럭시S3에 들어간 ‘자동 햅틱’ 기능이다.
갤럭시S3이 그 첫 번째 제품이다. 설정에서 소리 메뉴를 열면 맨 아래에 ‘자동 햅틱’ 메뉴가 보인다. 여기에서 전체적으로 끄고 켤 수 있으며 애플리케이션에 따라 자동 햅틱을 적용할지 고르는 것도 된다.
일단 여기에 체크하면 스마트폰이 한층 신나진다. 게임들은 소리에 반응해 세밀한 진동으로 손맛을 만들어 준다. ‘
앵그리버드‘를 비롯해 ‘
스왐피‘, ‘
컷 더 로프‘ 등 게임들은 더 실감나게 즐길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자동 햅틱은 삼성이 붙인 이름이고, 그 안에는 이머전이 만든 ‘리버브(reverb)’ 기술이 들어간다. 리버브는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에서 발생하는 사운드를 분석해 진동으로 만들어주는 기술이다. 따로 앱을 설치하는 방식으로는 안 되고 제조사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다. 게임 내에 직접 진동에 대한 코드를 넣는 것이 가장 정확하겠지만 실제로도 꽤 실감난다. 이승민 이머전 한국지사장은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통해 소리만으로도 직접 코드를 넣어서 진동을 만들어내는 것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설명한다.
리버브는 아직 초기 단계로 게임이나 앱에 우선 적용된다. 아직 음악, 동영상 등 미디어 플레이어에서는 안 된다. 이 지사장은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한번에 너무 많은 부분에 진동을 넣으면 이용자가 피로를 느끼기 때문에 현재는 게임에 특화하는 방향으로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머전은 이렇게 자동화하는 것 외에 아예 앱 개발부터 햅틱을 집어넣는 기술도 갖고 있다. ‘인티그레이터’라고 부르는 것인데 단말기나 앱 개발사들에게 개발도구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앱에 직접 적용할 수 있는 진동 모터 제어 패턴을 제공하기 때문에 총을 쏘거나 폭탄이 터졌을 때와 같은 상황을 쉽게 만들어낼 수 있다. 이를 응용하면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진동 패턴이 태어난다. 이를 통해 손을 유리나 나무판, 울퉁불퉁한 면에 문지르는 등의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햅틱은 진동 모터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1천 단계 수준으로 미세하게 모터의 세기를 조절하고 잔상이 남지 않도록 깨끗하게 끊어주는 것이 핵심인데, 현재는 일반 리니어 모터를 이용하지만 앞으로 스마트폰들이 피에조 모터를 품으면 더 세밀하게 진동을 맛볼 수 있다. 이머전은 이를 ‘HD햅틱’이라고 부를 계획이다.
인터뷰 말미에 개발중인 HD햅틱 데모를 통해 롤러코스터를 타는 동영상을 잠깐 볼 기회가 생겼다. 롤러코스터가 꼭대기로 덜덜거리며 끌려 올라가는 느낌부터 빠르게 내려오는 것까지 손 끝으로 전해진다.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정도다. 모든 영상이 이런 수준이 되진 않겠지만 적어도 총알과 폭탄이 날아다니는 전쟁 영화나 격투 액션 영화에서는 상당한 재미를 만들어주리라는 기대가 생긴다.
이머전은 앞으로 햅틱 기술을 게임 외에 앱에 적용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이 지사장은 스마트폰에서 e메일을 스크롤로 넘겨볼 때 중요한 e메일이 있는 부분에서 진동을 튕겨주면 어떻겠냐고 말했다. 듣고보니 지금이라도 스마트폰에, e메일 프로그램에 적용되면 꽤 유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가 이제 이머전에게,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떨어진 숙제일 것이다
더어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