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입니다. 간만에 시간이 잠깐 나서 이거야말로 롤 각이다 하고 달려들었지만 역시나 몇 번 쥐어 터지고 나선 역시 시간이 날 때는 게시글 업로드지 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저번 게시글처럼, 이번에도 미사여구는 그만하고 바로 시작하겠습니다.
이 게시글은 유튜브 “3프로TV”의 코너 “최준영 박사의 지구본 연구소”를 토대로 하고 있음을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 1. 이번 게시글에서는
저번 게시글을 이어서, 남극 과학기지 전반과 그 속에서 벌어지는 일상다반사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2. 저번 게시글 말미에 나왔던
전재규 대원의 희생을 뒤로하고 우리나라는 쇄빙선이라는 극지방에 갈 수 있는 『절대반지』급의 아이템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 번 전재규 대원의 명복을 빕니다.
이제는 남극 본토에 갈 때 다른 나라에 “본토 가세요? 혹시 여유 있으면 우리도 낑겨 가도 돼요?” 이런 아쉬운 소리를 안 해도 되게 되었고
본격적으로 남극 본토에 과학기지를 지어보자는 계획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부동산 관련해선 전 국민이 지식인이니 따로 설명은 하지 않겠습니다만 제일 첫 걸음은 뭐니뭐니 해도 임장이겠지요.
우리나라 정책 당국자들이 남극 지도를 펼쳐놓는 한편 기존 남극 조약 가입국과의 협의를 거친 후에
우리나라의 두 번째 남극기지가 지어질 곳으로
남극을 둘러싸고 있는 바다 중에서 로스해
그 인근지역을 부르는 빅토리아랜드
그곳에 바다에서 육지쪽으로 움푹 파인 테라노바만 이라는 장소에 자리를 잡기로 했습니다.
장보고 과학기지의 위치
어떻게 보면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남극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혹시나 해서 대피할 일이 생기거나
평시에 과학기지로 물자를 보급하기 위해서는 남극 내륙이라기 보단 해안가에 과학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어쨌거나 이 모든 노력 덕분에 2014년 서울에서 12,700Km 남위 74도 37분 동경 164도 12분에 장보고 과학기지를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3. 이쯤되면
그럼 남극 대륙 내부에 기지를 지은 국가는 어디어디냐? 라는 질문이 나올텐데요.
그야말로 내륙에 과학기지를 지은 국가는 그 수가 많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겠지요.
내륙 깊숙이 과학기지를 건설하게 되면 앞서 언급했던 장점들을 모두 포기하겠다. 라는 것을 의미할테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짜 남극을 알고싶다 괜히 수박 겉 햝기로 깔짝깔짝 하고 싶지 않다 하는 국가가 전 세계적으로 딱 네 나라가 있습니다.
예상대로 미국 러시아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이렇게 네 국가라고 하는군요.
으응? 얘들은 안지었어? ㄹㅇ? 이라고 할 만한 후보군으로 일본과 중국이 있겠는데요.
그 두 나라의 경우는 임시기지를 지어놓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철수하는 식으로 운영한다고 합니다.
4. 장보고 기지의 위치를 되짚어 보면
남위 74도 37분 동경 164도 12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지구 끝에 근접한 곳이겠지요.
그래도 다행인지 생각보다는 따뜻한 편이라고 합니다.
남극의 여름은 –2~3℃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겨울은 그딴거 없죠. 일단 기온도 기온이지만 초속 20~30m의 태풍급 바람이 24시간 내내 맹렬하게 불어닥치기 때문에 그 기간은 야외활동은 금지된다고 합니다. (태풍의 기준이 초속 17m라고 합니다.)
건물의 구조는 우주선 같이 생겨있습니다. 장보고 과학기지 전체 샷
중앙에 본관동이 삼각형 모양으로 있고 그 주변을 여러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는 형태이지요. 저번 게시글을 보신 분들은 짐작하시겠지만
장보고 과학기지 역시 현대건설이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역시 또 짐작하셨겠지만 이 역시도 적자를 꽤 보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또 현대건설 회장의 피눈물이...... 한국 과학 발전의 제물 현대건설
4-1. 메이데이 메이데이
남극 본토에 지어졌기 때문에 그 환경은 세종과학기지보다 훨씬 빡셉니다. 아무리 사람 살 만해도 남극 본토니까요.
그러다보니 가끔은 찰리 채플린의 명언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일이 벌어지곤 합니다.
그냥 별 생각 없이 “아 맞다 텀블러 놓고 갔지?” 하면서 옆 동에 있는 텀블러를 챙겼는데 본관 동으로 돌아가려고 문을 여는 순간 초속 30m의 눈보라 (블리자드)가 치는 바람에
“하.......x됐네”
하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그럼 어떻게 하느냐. 간단합니다. 인터폰 드는 거에요.
“여보세요?” “어 소장님 나 김박사인데요.” “어 김박사님 무슨 일이세요?” “저 갇혔어요.” “.......어디신데요?” “연구동이요.” “.......거 박사님 물건 좀 잘 챙기라니까..” “미안합니다.” “에휴, 구조대 보내 드릴테니까 기다리고 계세요.”
통화가 끝난 뒤에는 연구동에 갇혀있는 김박사님을 구출하기 위한 구조대가 파견되는 겁니다.
이 감동적인 짤을 여기에 쓸 줄이야
솔직히 저도 대체 왜 그런가 싶긴 해요. 안타깝게도 최준영 박사님은 왜 구조대를 보내야 하는지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셨고 구글링을 해봐도 딱히 나오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뇌피셜을 좀 굴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초속 20m/s의 강풍이 밤새 불었다가 아침 즈음에 잦아든다면 “야호~ 난 자유다!”라고 낄낄 거리며 나올 수 있겠지만 짧게는 몇 일, 길게는 몇 주 가량 계속 불어 닥친다면 먹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조난자 입장에선 바로 옆에 먹을 것이 쌓여있는데 쫄쫄 굶어야 하는 강제 다이어트 상황에 놓일 겁니다.
요즘은 어떻게 잘 살려나….
그리고 설상가상으로 남극에 눈이 내려서 쌓여버리기라도 한다면? 그 눈들이 문을 틀어 막아버린다면? 그때는 손 쓸 수도 없이 일이 커져 버리겠지요.
그래서 일이 더 커지기 전에 얼른 구조대를 파견해서 데리고 오는 것이 안전상으로도 훨씬 합리적인 선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4-2. 장보고 과학기지가 건설되고 나서는
우리나라에 남극에 대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세종과학기지보다는 규모도 훨씬 크고 그리고 남극 본토에 위치한 과학기지라는 네임 벨류가 큰 덕이겠지요.
어쨌거나 과학기지도 크게 지어놨겠다. 장보고 과학기지에는 많은 연구자들이 파견되기 시작했습니다.
앞서 게시글에서 언급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 합니다만 남극 과학기지는 여름철과 겨울철의 풍경이 다르다고 해요.
겨울철이야 생활 환경이 열악하니 최소 유지인원만 남겨두고 다들 철수하니까 쾌적한 1인 1실 체제로 돌아간다면
여름철엔 생활 환경이 나아지니 과학자들이 밀려와서 북새통을 이루는 것이지요. 1인 1실 체제가, 3인 1실 체제까지 갈 정도로 말입니다.
이런 곳에서 낑겨 자야 함
그냥 막 계산을 해봐도 여름의 인원이 겨울의 3배 가까이 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4-3. 남극에는 근데 어떻게 갑니까?
이야기만 들어보면 “대체 저길 왜 가는거여 ㅠㅠ”할 일이지만 사실 남극에 가서 생활하는 난이도보다 남극에 가는 난이도가 훨씬 더 큰 것 같습니다.
저도 아라온 호가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만 하더라도 그럼 뭐 배타고 쭉 가면 되겠지 싶었거든요.
생각을 조금만 해 보면 인천에서 배를 타서 남극까지 가려면 거의 군대에서 신병 교육대대에 무한정 대기를 타는 것 만큼이나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빨리빨리”의 정신에 따라서 배보다 빠른 교통수단인 비행기를 이용해서 간다는군요.
그런데 그 여정이...... 참..... 일단 스탭별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Step 1. 뉴질랜드로 가자
일단 세종 과학기지가 있을 시절에 한국의 주요 남극 방문 루트는 한국 ~ 칠레 ~ 남극 코스였습니다.
킹 조지섬과 칠레가 가깝거든요. 거기에서 칠레 공군의 협조를 받아서 공군기를 타고 날아갔습니다만
장보고 과학기지가 생기고나선 새로운 루트가 생겼습니다.
장보고 과학기지와 가까운 곳이 바로 뉴질랜드였거든요.
인천에서 비행기를 타고 뉴질랜드의 오클랜드로 간 뒤에
여기서 일단 토하고 시작함
오클랜드에서 비행기를 갈아타서 “크라이스트 처치”(Christchurch)로 날아갑니다.
그나마 갈만한 거리
일단 여기로 가기까지 비행기를 몇 차례 갈아타야 하기 때문에 녹초가 되겠지요.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Step 2. 기도 해 임마.
크라이스트 처치로 가는 이유는 그곳에 있는 항공사가 뉴질랜드 ~ 남극간 노선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그럼 거기에서 비행기를 잡아타면 되겠구먼 싶겠지만 비행기는 있지만 기도를 해야 하는 일이 벌어집니다.
이제부터 이게 필요함
아무래도 위치가 남극에 가깝고 거기에다 바다다보니 기상을 예측하기가 어려운거에요.
그래서 항공사에 티켓을 끊고 나면 듣는 소리가 “일단 아침에 나와 보세요.”라고 합니다.
아침에 나가서 기상 상태가 비행이 가능하다 싶으면 비행기 띄워서 날아가는거고 기상 상태가 나쁘다 싶으면? 꼼짝없이 다시 호텔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런데 비행을 할 리가 없음
그렇다면 가장 미칠 것 같은 상황은 아무래도 “어..... 약간 애매한데?”일 겁니다.
애매하니까 날씨 좀 더 괜찮을 때 까지 기다려 보자 하면 다섯 시간이고 여섯 시간이고 한정 없이 기다리다가 “날씨가 더 안 좋아지네요. 그냥 돌아가세요. ㅎㅎ;; ㅈㅅ.. ㅋㅋ!!” 라는 말 들으면 그냥 호텔로 터덜터덜 돌아가야 하는 겁니다.
전설의 탄생
그나마 날씨가 좋아져서 비행기가 떠도 착륙하는 것 또한 하늘이 도와야 해요.
남극의 여름이 되어 얼음이 녹아서 땅이 드러나면 다행이지만 얼음이 녹지 않는다면? 망치 들고 얼음을 조금 깨봐서
“야 얼음 두께 어느 정도임?” “어 적당히 두꺼워.” “그래? 착륙 가능 하다고 무전 때려.”가 되는 겁니다.
어차피 남극에 얼음이 녹는 걸 기대하기는 어려우니 차라리 얼음이 두꺼워서 비행기가 착륙해도 바닥이 푹 파이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다는 거지요.
그러면 이제 승객을 싣은 비행기는 남극의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이 착륙을 해야 하는 거구요.
거기에 비행기 또한 군용기를 개조한 녀석이다 보니 『승객이 죽지만 않게 해라.』가 모토입니다.
항공사의 손님대접
비행기가 수직 좌석이라 뒤로 젖히지도 못해요. 그나마 비행 시간이 제주도 수준으로 30분 정도 걸리면 그나마 참을 만 하겠지만 뉴질랜드에서 남극까지는 7시간을 날아가야 합니다.
거기에 “승객이 죽지만 않게 해.”라고 했으니 비행기 내에 방음시설 같은 것도 없습니다. 마치 할리우드 영화에 나오듯이 귀에다가 헤드폰을 끼고 프로펠러가 돌아가는 엄청난 소음과 뒤로 졎혀 지지도 않는 좌석의 불편함을 장장 7시간을 견디며 날아가야 하는 거지요.
주변에 남극 다녀온 사람이 있으면 “와..... 가는데만 해도 고강도의 똥 고생을 했구나.” 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5. 남극 과학기지에서의 생활
가장 큰 것은 연구 할 거리가 너무 많다는 거지요. 개나소나, 아무 때나 남극을 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남극 과학기지 연구원으로 당첨되는 순간
주변에서 “야 남극 간다며? 이것 좀 연구 해줘봐.” “야 남극 간다며? 이것도 좀 연구 해줘봐.” “야 남극 간다며? 데이터 줄 테니까 연구 해줘봐.” 하고 달려들기도 하고
남극 간다는 친구에게 보내는 축하편지
본인 딴에도 “이 때 아니면 못 간다.” 싶기 때문에 연구할 거리를 바리바리 싸들고 가는 것이지요.
그러니 시간이 모자를 수 밖에요.
남극 과학기지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우아하게 연구만 하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저저번 게시글에서 소개해 드렸던 것처럼 남극은 투잡러가 기본 옵션입니다. (요리보조가 된 의사 이야기)
이것도 저것도 아닌데 투잡을 해야하는 상황
즉, 가만이 앉아서 연구를 할라고 해도 “님님 보일러 고장남 고쳐주셈.” “님님, 양파 까야 하는데 도와주셈.” “님님, 헬기 엔진 나갔는데 도와주셈.” 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업무 메시지가 폭주를 하니
“하 X발 일 좀 하자 좀~~”gif짤
남극 대원들의 심정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큰 걸림돌은 아무래도 자연이겠지요.
물론 남극은 연 강수량이 200mm의 사막이지만 몇 천만년 단위로 그곳에 짱박혀 있었기 때문에 눈이 km단위로 쌓여있는 곳입니다. 거기에 바람은 불었다 하면 태풍급이지요.
인은 대표적인 남초 커뮤니티니 눈이 내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계실 겁니다.
혹시 모르실까봐 준비했습니다.
미필자들을 위해 설명드리자면 한번, 바람이 한번 불었다 하면 몇 천만년 단위로 쌓여있던 눈들이 하늘 높이 솟구치면서
“얏호 가자! 과학자 놈들 고생 좀 해봐라” 하며 과학기지를 덮치기 때문에
강원도에서 눈을 치우는 것 따위는 귀여운 아이들의 소꿉장난으로 보일 정도로 남극의 과학기지 대원들은 늘 설 삽과 너까래를 손에 잡고 살아야 합니다.
군대에서는 눈을 악마의 비듬이라고 하는데요. 남극의 눈은..... 글쎄. 루시퍼의 눈꼽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악착같이 시간을 쪼개 연구 성과를 내는걸 보면
인간을 갈아 넣으면 되긴 된다. 안돼야 하는데 돼서 더욱 짜증난다.
라는 군대의 법칙이 그대로 작동하는 것 같습니다.
6. 물을 다오 물을
남극은 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일단 지구 지표에 있는 물의 97.2%가 바닷물이고 나머지 2.8%만 이른바 ‘담수’ 혹은 ‘민물’인데
빙하가 약 2%를 차지하고 있거든요. 북극의 빙하가 점차 녹아내리고 있으니 남극의 빙하가 지구상의 담수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겠습니다.
그렇다면 남극 과학기지의 대원들은 적어도 물 걱정은 없겠구나 그냥 얼음 녹여다가 끓여먹으면 되겠지 뭐 싶겠지만
생각과는 다르게 얼음을 녹여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장보고 과학기지에서는 남극 바다에 파이프를 깔아놓고서 바닷물을 끌어올려 ‘담수화 시설’에 집어넣고 바닷물을 민물로 만든다고 해요.
엥? 굳이 왜? 널려있는 얼음 놔두고? 라고 생각하실텐데요.
그 이유는 물이 다른 액체들과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른 액체들은 고체에서 액체로 상태변화가 일어나면 부피가 늘어나는데 반해,
물은 고체(얼음)에서 액체(물)로 상태변화가 일어나면 부피가 줄어드는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과학시간에 자주 본 짤
즉, 엄청나게 큰 얼음덩어리를 가지고와서 냄비에 넣고 끓여봐야 얻을 수 있는 물의 양은
“애걔? 고작 이정도 밖에 안 된다고?” “이거 인건비도 안 나오잖아?” 하는 일이 벌어지거든요.
얼음을 녹인 뒤의 반응
그러느니 그냥 바닷속에 파이프 꽂고 직접 물을 길어와서 짠물을 단물로 바꾸는 것이 훨씬 더 속 편하지요.
물론, 남극이 극한의 환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차 하는 순간 바닷물이 꽁꽁 얼어 버려서 파이프가 막혀버리는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얼음을 물로 녹이는 시설이 있긴 하지만 그건 비상시에만 사용한다고 합니다.
결국 짠물을 민물로 바꾸든 얼음을 물로 녹이든 그 모든 것은 전기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에
남극에서는 전기가 정말로 중요할 수 밖에 없습니다.
7.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앞서 말씀드렸지만 남극 과학기지의 풍경은 겨울과 여름이 확연히 다릅니다.
겨울철은 삭막한 환경 탓에 사람이 줄어들어서 쾌적한 1인 1실 체제로 운영된다면
여름철은 생활 환경이 나아지니 1인 1실 체제가, 3인 1실 체제 혹은 운없는 분들은 복도에서 잠을 자야 할 상황까지 간다고 말이지요.
남극 과학기지 입장에선 여름철에 사람이 몰려오니 사람 구경을 해서 반갑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하 x발 복도에 침낭 깔아야 하는구먼.”하는 생각을 한다고 합니다
일정상으로도 남극의 여름은 짧기 때문에 (3달 정도) 그 짧은 시간 내에 최대한의 연구성과를 내야 합니다.
거기에 자연 환경적으로도 남극은 여름에 백야현상으로 해가 지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기계라고 가정한다면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돌린다면 최대한의 효율을 낼 수 있겠지요.
그래서 남극의 여름에는 크런치 모드다 뭐다해서 프로그래머를 갈아 넣느라 불이 꺼지지 않는 판교의 등대처럼 비행기나 헬기들이 쉴 새 없이 연구원들을 실어 나르면서 데이터를 수집 하고 정비가 끝나면 바로 또다시 출동하는 일들을 반복한다고 합니다.
여기는 밤이라도 오지….
그렇게 정신없는 3달 간의 여름이 끝나고 마른 오징어 마냥 쥐어 짜인 연구원들이 떠나고 나면 운영 시스템이 주 7일제에서 주 5일제로 전환된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마냥 좋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 여름철에는 그 수 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리느라 24시간 내내 보급품들이 밀려 들어 왔다면
남극의 겨울이 되면 사람도 떠나지만 보급 사정 또한 여의치 않게 되기 때문에
냉동 식품으로 버티느라 신선한 채소는 구경도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고 합니다.
8. 남극 생활의 고충
이렇게 연구로 쥐어 짜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 사는 곳이니 만큼
남극의 삶에서 좋은 점도 있다고 해요. 일단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는 겨울철에나 볼 수 있는 새하얀 눈밭이 황량하게 펼쳐져 있는 풍경을 보는 데서 오는 즐거움도 있고
무엇보다도 별을 그렇게 많이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실제 장보고 기지에서 촬영한 남극의 하늘
앞서 게시글에서도 언급했듯이 광해라는 것, 전파라는 것이 없다 보니 육안이든, 전파 망원경이든 별 보기는 정말 좋은 곳이거든요.
전파 망원경으로 아름다움을 느끼긴 힘들 수 있겠지만 육안으로 보면 정말로 아름답다고 합니다.
사실 저도 태어나면서 부터 쭉 도시에서만 살았기 때문에 하늘에 별이 많다는 것을 지식으로만 알았지, 실감을 못하고 살았었는데
군대 가서야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당직 부사관을 하면서 초병들을 근무지로 인솔하고 나서 당직 사관에게 허락을 받고 흡연장으로 담배를 피우러 갔었는데
새벽시간인지라 흡연장에도 불을 꺼놨거든요. 그때 하늘을 올려다보니 머리 위에 은하수가 하늘 끝에서 끝까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때 은하수를 처음 본 것 같아요.
그때의 감흥을 표현하자면 ‘별이 쏟아지려고 한다.’라는 문장이 몸으로 실감나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마냥 올려다 봤는데 진짜 저게 쏟아지면 어쩌지? 하는 말도 안되는 상상이 들면서 덜컥 무서워지는 기분이 들 정도였습니다.
어쨌거나 남극에 간다면 인류가 산업화를 이룩하면서 그 대가로 잃어버려야 했던 밤하늘의 풍경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럼 별을 많이 보는 것이 좋다고 한다면 고충은 무엇인고 하면
특히 겨울 대원들은 “뼈에 사무치도록 외롭다.”라는 대답을 한다고 합니다. 일단 남극의 겨울이 춥기도 하지만 바람이 엄청나게 강하기 때문에
밖에 나가는 게 거의 불가능하거든요. 그러자면 긴긴 겨울을 기지내에서 탁구를 치기도 하고 같은 처지의 대원들과 놀이를 하겠지만 그게 원데이 투데이도 아니고 말이죠.
GOP에 교대없이 반년 넘게 갇혀있는 기분이라고 해야겠죠. 으…….
그리고 심리적인 요인인지는 모르겠지만 바람 소리가 그렇게 크게 들린다고 해요.
분명 해가 뜨지 않는 흑야의 시간이고 기지 내에서 방음 장치를 설치한다고 하지만 귀마개를 하지 않으면 잠을 이루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합니다.
그래서 남극의 겨울에는 많은 대원 분들이 수면 유도제를 복용하는 게 일상이라고 합니다.
실제로도 뇌 구조가 변한다는 기사가 나옴
그리고 군대를 다녀오신 분들은 알겠지만 좁은 곳에서 맨날 보는 사람들을 봐야 하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지는 바람에 자연스럽게 인간관계에서 갈등이 자주 발생한다고 해요.
지금은 남극이어도 인터넷이 잘되다 보니 그럴 일이 없겠지만 남극에 인터넷이 잘 안되던 시절 하루에 한 번 극지 위성이 상공을 지나갈 때만 느리게나마 간신히 인터넷이 되던 시절에는
남극 대원들 사이에서
“야, 이게 맞다니까?” “ㄴㄴ 아닌데?” “내기할래?”
하는 논쟁이 자주 벌어졌다고 해요.
사실 생각해보면 금방 인터넷으로 확인도 되고 갈등 같지도 않은 갈등이겠지만
사람들 신경이 날카로워지다 보니 되게 격렬하게 갈등이 벌어지는 것이고
위성이 지나갈 때 말고는 인터넷이 안 되다 보니 위성이 지나가는 시간이 되어서 인터넷으로 확인하기 직전까지 말다툼이 격렬하게 벌어지는 것이지요.
이해를 돕기 위해 가상의 상황을 설정해 보자면
남극 과학기지에서 최똘똘 박사와 김김김 박사가 식사를 하던 도중에
자신이 갔던 여행지 Best 3.를 이야기 하더라 이거죠. 각자가 갔던 여행지에 대해 재미있던 썰도 풀고 거기에 숨어있던 인문학적 지식 자랑이 이어지다가
“울산시..... 참 좋은 곳인데 요즘 안타까워요.” “왜요?” “2014년도 까지는 인구가 꾸준이 늘었는데. 요즘은 인구가 빠져나가는거 같다니까요?” “2014년 아닌데?” “?” “2015년까지임 내 고향이 울산이라 잘 알아요.” “2014년 아니에요?” “ㅇㅇ 2015년임.” “아닌데? 2014년인데?” “하..... 2015년이라고?” “아니라고 2014년이라고.” “너 왜 말투가 그따위에요?” “님은 왜 존대말하면서 반말 같아요?” “하.....됐다 됐어...... 님 내기?” “좋아, 극지 위성 지나갈 때 확인 ㄱㄱ” gif짤
남극의 흔한 일상.gif
한국에서 보면 갈등 같지도 않을 이런 일로 갈등이 극렬하게 벌어지다가도
결국 위성이 지나갈 때 까지는 휴전을 해야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거지요.
이런 갈등 상황이 중앙부처로 당연히 전달이 됐겠지요.
그래서, 중앙부처에서도 이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까 여러 시도를 해봤다고 합니다.
술도 많이 가져다도 줘보고 담배도 넉넉하게 줘 보고 말이죠.
물론 흡연자, 음주자 입장에선 땡큐 할 일이겠지만 남극의 겨울이 워낙 길다 보니
술과 담배는 늘 부족하다고 합니다.
그럼 이제 이걸 어떻게 해결하느냐...... 인류애에 기대는 수 밖에 없다고 합니다.
술과 담배가 부족해지면 전화기를 들어서 이웃 기지에 연락하는 거지요.
“어 헬로?” “여기 한국 기지인데요.” “어어 그래 무슨 일이셔?” “거기 담배 남은 거 있음?” “ㅇㅇ 우리 세 보루 남아있음.” “어 그래? 그럼 날씨 좋아지면 놀러갈게.”
이런 식으로 남극 과학기지 사이에선 날씨만 좋아졌다 하면 교류가 활발해 진다고 합니다.
물론 과학연구 협력의 일환으로 교류를 하는 것도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물자를 서로 주고 받기 위해 교류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남극의 미풍양속
그래서 세종 과학기지가 있는 킹 조지섬을 남극의 멘하탄이라고 부르는 거겠지요.
근처에 과학기지들이 밀집되어있으니 서로 놀러 다니면서 연구 협력도 하고 기호품 협력도 하는 거지요.
그럼 남극의 멘하탄 킹 조지섬이 아닌 남극 본토에 있는 장보고 기지의 경우는?
이웃한 곳에 기지를 두고 있는 이탈리아 기지와 친하게 지낸다고 해요.
거기는 피자의 나라 답게 기지 내에 피자화덕도 구비하고 있고 에스프레소가 태어난 곳이니 만큼 커피 내리는 솜씨가 장난 아니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