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삼국지M)
삼국지의 한축을 담당하는 위나라의 초석을 다진 난세의 영웅(혹자는 간웅이라 하지요.)
조조(曺操)에 관련된 소식입니다.
조조의 자는 맹덕(孟德). 묘호(廟號)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된 삼국지를 대표하는 인물으로써,
패국(沛國)의 초(譙:安徽省 毫縣) 출생입니다. 환관의 양자였으며 '황건의 난(黃巾亂)'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며, 화려하게 등장하죠.
동탁이 죽자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죠.
조조의 자는 맹덕(孟德). 묘호(廟號) 태조(太祖).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된 삼국지를 대표하는 인물으로써,
패국(沛國)의 초(譙:安徽省 毫縣) 출생입니다.
환관의 양자였으며 '황건의 난(黃巾亂)' 평정에 공을 세우고, 두각을 나타내며, 화려하게 등장하죠.
동탁이 죽자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를 옹립하고 종횡으로 무략(武略)을 휘두르게 되었죠.
200년 군벌의 최대 세력이었던 관동군의 맹주 원소를 관도(官渡)의 대전에서 격파하면서
화북(華北)을 거의 평정하고 나서 남하를 꾀했는데,208년 손권(孫權)·유비(劉備)의 연합군과
'적벽(赤壁)'에서 싸워 대패, 이후도 그 세력이 강남(江南)에는 미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해 승상(丞相), 213년 위공(魏公), 216년 위왕(魏王)의 자리에 올랐다. 그는 정치상의 실권은 잡았으나
스스로는 제위에 오르지 않았고, 220년 정월 뤄양[洛陽]에서 죽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여 많은 문인들을 불러들였으며,
자신도 두 아들 조비(曹丕)·조식(曹植)과 함께 시부(詩賦)의 재능이 뛰어나,
이른바 건안문학(建安文學)의 흥륭(興隆)을 가져오게 하였죠.
후세에 간신(奸臣)의 전형처럼 여겨져 왔는데,
근년에 이르러 중국 사학계에서는 그를 재평가하는 논쟁이 일기도 하고 있습니다.
삼국지.. 후한말부터, 진나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전까지의 100여년의 역사를 기록한 중국의 역사로,
천하 통일을 놓고 유비 손권과 자웅을 겨뤘던 삼국지의 영웅 조조의 진짜 무덤이
허난(河南)성에서 발굴돼 중국 학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이번'조조'의 무덤 발굴은 허난성 문물국이 안양(安陽)현 시가오쉐(西高穴)촌에 있는 동한시대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이 무덤이 문헌상으로만 전해 내려오던 위나라 무왕 조조의 진짜 무덤임을 확인했다고 인민일보 등 중국 언론이 보도했습니다.
'조조'는 죽기 전 무덤이 도굴되는 것을 막기 위해 72개의 가묘를 만들라는 유언을 했던 것으로 유명한대요.
이 때문에 그의 무덤의 소재지와 관련해 다양한 학설이 난무했지만
지금까지 그의 진짜묘는 발견되지 않았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발견된 묘소는
위(魏)나라 무왕(武王) 조조의 능묘인 것으로 확신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무덤에서는 사망 당시 60세 전후로 추정되는 남성의 유골도 발굴되었으며,
중국 고고학계는 조조가 6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문헌상 기록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이 유골을 조조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